1004섬 신안 임자도 소개

 임자도는 신안군의 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지도(智島) 점암에서는 불과 4㎞ 떨어져 있으며, 면적이 39.30㎢ 해안선 길이는 60㎞인 섬이다.


 임자도는 백제시대의 개요지도(開要只島)라는 이름이 고려 중기까지 개야소도(開也召島), 가야소도(伽倻召島)라고도 불리고 있다가 고려 후기들어 임치도(臨淄島)로 바뀌었으며 조선 숙종 37년(1711년)에 이르러 오늘의 이름인 임자도(荏子島)가 되었다.

 임자도(荏子島)라는 섬이름은 섬에 들깨가 많다 하여 임자(荏子)라는 섬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질학자들에 의하면 임자도의 지형은 중동에서나 보는 사막의 지형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고 하며, 그래서 뭇사람들은 임자도를 한국의 유일한 사막이라 부른다.


 예전에 '임자도 처녀들은 모래 서 말을 먹어야 시집간다'는 말이 있었다. 임자도에 그만큼 모래가 많아서 바람에 날려 입에 들어오는 모래가 많았다는 소리이다. 임자도 사람들은 입으로 들어오는 모래뿐만 아니라 머리나 눈썹에 쌓이는 모래를 평생 짐처럼 이고 다녀야 했다. 

신안 임자도 관광 명소들

대광해수욕장 

임자도 서쪽에 자리잡은 대광해수욕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고 넓은 해수욕장이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하얀 백사장은 장장 12km.

   용난굴.

용난굴은 어머리해수욕장에 위치하며, 

용이 승천했다고 해서 마을사람들이 

부르게되었다는 유래가있다. 

그리고 용난굴의 입구는 육지지만 

나가는 출구는 바다와 연결되어있고, 

물때를 잘 맞추면 동굴탐사도 할수있다.

대둔산

임자도에는 대둔산, 벙산, 불갑산, 삼각산등 야생화와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등산로들이 있습니다. 

봄에는 다향한꽃을보고, 

가을에는 단풍들보면 

등산을 하실수있습니다.



전장포 새우젓

새우젓 토굴

조희룡 유배지 및 적거지

 새우젓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신안임자도 전장포 입니다. 

 전국 새우젓 어획고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새우는 모래가 많은 곳에 서식하고 알을 낳는 데 임자도 부근에는 바닷 속에 모래가 많아 자연히 새우가 많이 서식한다고 한다. 임자도 근해에서 음력5~6월에 신선도가 좋은 새우를 잡아 전장포에서 바로 소금으로 절인다. 이것을 섭씨 5℃가 되는 저온상태에서 짜고 비린내가 없을 때가지 장기간 숙성시켜야 새우젓이 완성된다. 이렇게 해서 전장포 새우젓이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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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찬리 솔개산 기슭에는 1970년 주민들이 새우젓을 저장하고 숙성시키기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한 4개의 토굴이 남아 있다. 현대로 오면서 선박기술과 교통의 발달로 임자도 근해에서 잡은 새우를 도시로 곧바로 내다 파는 현상이 생겼는데, 이는 전장포에 대규모 저장창고가 없었기 때문이다. 4개의 토굴을 조성한 것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주민들의 노력이었다. 그러나 동굴 내의 온도가 높아 기대했던 효과를 보지 못했고, 그 이후 동굴만 그래도 방치해 두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토굴은 길이 100m, 너비2.4m, 너비3.5m 규모이며, 말굽모양이다.이 토굴은 근대문화유산이면서, 새우젓의 고장 신안군 주민들 생활사와 관련된 소중한 유산이다.

조희룡은 조선후기 추사 김정희와 쌍벽을 이룬 문인화의 대가이다. 1789년 5월 서울에서 태어난 조선후기 매화도와 묵란도에서 고유의 화풍을 확립한 화가로 1847년 벽오시사를 결성, 후배화가들을 이끌고 문인화단의 중심인물로 활동하였다. 추사 김정희 등이 도입한 중국 남종 문인화로부터 이념미를 배제한 조선적 감각을 가미한 화풍의 세계를 열었던 사람이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가 서로 번갈아 가며 세도정치를 하던 시기에 활동한 조희룡은 예송논쟁에 휘말려 1851년 임자도로 유배되었다. 조희룡이 유배생활을 했던 장소는 임자도의 이흑암리 마을이다.